책 <파이어족이 온다> 리뷰 : 조기은퇴족, 파이어족이 되는방법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지"

비단 파이어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힘들게 돈을 버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 맞는 말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임계점을 넘어서는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건 분명히 맞는 명제이다. 하지만 그 앞의 또 다른 불편한 명제.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파이어족은 이 명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파이어 운동은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많은 부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돈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당연히 돈이 많을수록 더욱 행복할 것이다. (물론 돈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동일할 일은 없다. 노동은 곧 고통이므로)

하지만 파이어족은 다른 해결법을 추구한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돈은 불행을 막아줄 정도로만 Compact하게 쓰고(절약하고), 나머지는 저축과 투자에 집중한다. 그리고 모아둔 돈을 바탕으로 조기에 은퇴하여 돈 대신 얻게 되는 경제적 자유, 시간, 인간관계 등의 가치를 통해 행복을 극대화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의 소비를 통해 얻게 되는 작은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가치를 극대화하여 더 큰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다.

저자의 파이어족 도전기를 담은 일종의 체험 수기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운동은 절약과 저축을 통해 돈을 빨리 모으고, 빨리 은퇴하여 경제적으로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 운동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파이어족이 되는 실천적인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사실상 저자가 파이어 운동에 동참하게 된 계기, 그리고 파이어 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고충을 담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파이어 운동에 대해 낙관론적 이상론만을 펼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파이어 족이 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동반자인 아내를 설득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최대한의 절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우울감, 다른 사람과의 가치관 충돌에서 야기되는 외로움까지. 아마 FIRE 운동에 솔깃했던 사람도 책을 읽고 나면 환상이 깨질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파이어 운동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주체적인 삶에서 큰 감명을 받는다. 나는 과연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어쩌면 한국인에게는 낯설지 않은 라이프스타일

사실 파이어 운동의 일부 개념은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저축에 대한 관념이다.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저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선진국이다보니 노후에 대한 걱정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 사람들은 저축을 하지 않고 노년에도 계속해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취업과 함께 노후 준비를 할 정도로 저축을 중시한다. 그리고 은퇴 후에 여가를 즐기며, 자녀들과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을 하나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파이어 운동에서 중요시하는 은퇴 후의 행복한 삶은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다만 파이어 운동이 제시하는 화두는 그 은퇴의 시점을 과감하게 앞당긴다는 것이다(Early Retire). 물론 이를 위해서는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는 절약과 조기은퇴 후 자산증식의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 등을 짊어져야 한다. 자본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불확실성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답은 없다. 자본주의 적인 삶이든, 욜로의 삶이든, 파이어 족의 삶이든 그 안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 불행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관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는지의 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