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 : 책의 도시에 우뚝 솟은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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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 파주 출판도시. 사실 출판사가 모여있는 산업단지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이곳을 하나의 도시로 친다면 랜드마크는 아마 ‘미메시스 뮤지엄’과 ‘지혜의 숲’이 될 것이다.

지혜의 숲은 아시아출판문화센터 건물에 조성된 공유서재로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조성되었다. 여러 학술기관과 저명인사로부터 기증받은 책들을 한 데 모아 가히 숲이라 부를만한 장관을 보여준다. 엄청난 규모와 이색적인 컨셉 덕에 전반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의 출판도시에서도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지혜의 숲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출입이 가능하다. 층별 주요 공간은 다음과 같다.

지하 1층 : 활자의 숲(활판인쇄박물관)
지상 1층 : 지혜의 숲 1/2관, 북소리 서점
지상 2층 : 지혜의 숲 3관, 라이브러리스테이 지지향, 헌책방 보물섬

그 중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지상 1층이다. 공간별 세부설명은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조.

지혜의숲

지혜의숲 1 학자, 지식인, 연구소에서 기증한 도서를 소장한 공간입니다. 기증자가 평생 읽고 연찬한 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유서재로서 학자와 지식인의 삶을 책을 통해 보여주는 공간

forestofwisdom.or.kr

지혜의 숲에 들어서니 꺼낼수나 있을까 싶은 높은 선반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에서 오는 장엄함만큼은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나 담양의 죽녹원에 뒤지지 않는다.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의 숲은 장르와 제목의 순서에 따라 책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달리, 기증자 별로 섹터를 나누고 해당 기증자의 책을 모아두었다. 전자가 독자의 편의성을 위한 배치라면, 후자는 기증자의 취향을 온전히 담기 위한 배치이다. 특히 지혜의 숲 1관은 학술적인 성취를 이룬 학자나 기관의 기증도서로 구성되어, 마치 지식인의 서재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책을 분류를 하다보니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찾기는 쉽지 않은 단점이 있긴하다. 그래서 지혜의 숲에는 책의 위치를 알려주고, 때로는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는 ‘권독사’라는 분들이 존재한다. 만약 책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읽어야할지 모르겠다면 권독사 분들께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도 권독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건물 한 구석에는 문화복합단지 답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주로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주로 애용하는 듯.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지혜의 숲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책이 없을 수 있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들은 찾아보면 다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목적없이 책장을 훑다보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들을 만나는 경우도 더러 생긴다.

지혜의 숲 2관에서는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보통 출판사들은 일관된 분야나 주제로 책을 발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출판사의 책들을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컨셉이 완성된다. 문학 전집 같이 모아두면 책을 찾기도 쉬워 다른 전시관에 비해 활용도도 높은 편이다.

한편 2관 중앙에는 크게 카페 파스쿠찌가 위치해있다. 도서관에서 커피를 못마셔서 카공족이 되었던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2관의 한 켠에는 책을 판매하는 ‘북소리 서점’이 있다. 이 곳은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다. 서점의 간택을 받아야 하는 출판사들의 슬픈(?) 숙명을 깨고 직접 책을 큐레이션하여 판매하는 의미있는 곳이다. 출판사 별 야심작들이 판매되기 때문에 최근의 출판업계 트렌드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출판도시의 랜드마크답게 큼직하게 도시 전체의 조감도가 설치되어 있다.

지혜의 숲이라는 공간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막대한 장서들을 보면 도서관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 같다가도, 때로는 대형서점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칫 잘못했다간 책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나가는 관광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혜의 숲이 처음 조성되었을 당시 막대한 돈을 들여 '종이 무덤'을 짓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혜의 숲이 가진 독특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혜의 숲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갔을 때에도 부모 손을 잡고 따라와서 책을 읽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랜드마크가 도시의 특색을 드러내듯이, 지혜의 숲도 사람들이 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독서 문화를 퍼뜨리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